Page 152 - 선림고경총서 - 32 - 종용록(상)
P. 152
152
옥에다 문채를 새기다가 순수함을 잃고
-화상의 솜씨가 높으시군요!
구슬이 못 속에 있을 때 스스로 아름답다.
-자랑을 그만 하라.
십 분 서늘한 공기여,더위를 녹이는 초가을이요,
-온통 가을 바람이로다.
한 조각 한가한 구름이여,아득히 하늘과 물을 가르도다.
-좋은 일에 마장이 많구나!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옛날에 도단이(徒單二)라는 부마(駙馬)가 남경(南京)으로 부임
하는 길에 자주(磁州)대명사(大明寺)를 지나다가 승당(僧堂)에
들러 승들이 벽을 향해 앉은 것을 보자 기쁜 마음으로 말하되
“한 무리의 담담한 첨지들이로다”하니,전(詮)대사가 이르되
“담담한 가운데 맛이 있소”하였다.물의 성품은 본래 담담한
것이나 차나 꿀을 가하면 단맛이나 쓴맛이 생기듯이,성품 또
한 담담한 것이나 미혹과 깨달음으로 갈라지면 범부와 성인으
로 나뉜다.비록 담담한 가운데 맛이 있다고 하나 이는 맛없는
맛이니,그 맛은 항상하여 묘하게 감정과 말[情謂]을 초월한다.
정(情)자는 마음[心]쪽에 속하고 위(謂)자는 말[言]쪽에 속하나
여기에 이르러서는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마음을 놀릴 곳이 없
다.
법안(法眼)이 이르되 ‘이치가 극진하면 감정과 말을 잊거니
어찌 그를 견줄 비유가 있으리오?’하였고, 도덕경(道德經)
곡신불사장(谷神不死章)에 이르되 “현빈(玄牝)의 문이 천지의
뿌리이니,면면하여 있는 듯하다”하였고,또 이르되 “나는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