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2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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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걸린 호공(壺公)에게는 별다른 세계가 있네.
-행여 딴 천지가 아니었던가.
밤의 강물,금빛 파도에 계수나무 그림자 띄우고
-위로 뚫리고 아래로 통했다.
가을 바람 눈발 서릴 때 갈대꽃을 껴안았다.
-크고 작음이 명백하구나.
싸늘한 물고기는 깊이 처져 입질을 않는데
-낚시만 공연히 드리웠다.
흥이 다하자 맑은 노래에 뱃머리를 돌린다.
-다시 바람에 불려 딴 곡조가 되었다.
평창 스승께서 이르시다.
물이 바다로 돌아가니 파도가 조용하고 구름이 창오(蒼梧:
상제의 궁전)에 이르니 기상(氣象)이 한가롭다.그러기에 이르
되,서로 욕하기를 부리 맞대듯 하더라도,서로 침 뱉기를 물
뿌리듯 하더라도 이는 운문에 있어서는 “남아도는 생각을 거두
어들이는 일의 번거로움[事華]이 싫어서”에 해당한다.번거롭다
는 화(華)자는 두 가지로 쓰이니,첫째는 꽃을 버리고 열매를
취한다는 뜻이요,둘째는 일이 많아 번화함을 싫어한다는 뜻이
다.“고향에 돌아오니 어디가 삶의 터전인고?”라고 한 위의 구
절은 보장론 에서 나온 것이요,아래의 구절은 운문의 착어
(着語)로서 어느 곳에서 더듬어 찾을꼬?함이니,만일 고동을
멈추고 우두커니 생각하여 한 생각이 만 년 간다면 설사 도끼
자루가 썩는다 하여도 역시 더딘 바둑을 둔하게 행마(行馬)하
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