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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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르되 “한여름 동안 덩굴 위에 가지가 돋고 덩굴
이 뻗었는데 이제 와서 풀은 깎고 뿌리는 파내어 일제히 깎아
버렸다”하거니와,30년 뒤에 이 이야기가 크게 성행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그렇다고 어찌 굳이 주머니에 숨기고 덮
개로 덮고서 숨을 죽이고 말소리를 삼켜야 할 필요야 있겠는
가?그렇게 한다면 담벽을 향한 듯 답답하고 잔솔밭에 널을 메
고 가듯이 융통이 없어서 선대의 종풍을 더럽히리라.
제방에서 이르되 “서(徐)씨네 여섯째가 널을 메고 가는데 다
만 한쪽만을 보고 가더라”하고, 상서(尙書) 에 이르되 “배우
지 않으면 벽을 대한 듯이 답답하다”하였는데,그 소에서 이
르되 “담을 대한다 함은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뜻이니
라”했다.그대는 보지 못했는가.“영산에서 백호상(白毫相)을
쏘아내니 동방으로 만 팔천 세계를 비추니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