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선림고경총서 - 34 - 종용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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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용록 下 49
여남(汝南)의 선현전(先賢傳)에 이런 말이 있다.어느 때 큰
눈이 내려서 길[丈]이 넘게 쌓였다.낙양(洛陽)의 군수[令]가 몸
소 나서서 살피고 다니다가 사람들이 눈을 치우고 걸인을 구해
내는 광경을 보고는 원안(袁安)의 문으로 가려 하니 길이 막혀
있었다.생각하기를 “원안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하고는,사람
들을 시켜 눈을 치우고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원안은 죽은 듯
이 누워 있었다.묻되 “어째서 나오지 않고 있느냐?”하니,원
안이 대답하되 “큰 눈이 와서 식구들 모두가 주리는데 남의 일
에 간여함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하였다.군수는 그를 어질
다 여기고 그를 효렴(孝廉)하다고 천거했는데,이는 중읍이 비
유를 들어 잠꼬대를 한바탕했을 뿐이요,결코 또렷또렷[惺惺]하
지는 못하다고 읊은 것이다.그러므로 “그윽한 후원의 사립문
밤인 듯 열리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갑자기 앙산의 점검[點破]을 받아 중읍은 온통 그대로[全體]
작용하게 되었으니 고목에 봄기운이 돌아서 봄바람이 율통 속
의 재를 불어 날린다고 송한 것이다.
채옹(蔡邕)의 월령가에 말하기를 “대를 끊어서 대통[管]을 만
든 것을 율통(律筒)이라 하는데 외진 방에다 두고 갈대청[葭莩]
을 재[灰]처럼 만들어 한쪽 끝과 가지런하게 채워 두면 그 음
기[月氣]가 이를 때 재는 날아가서 대통은 비고 양기가 생겨
죽음에서 살아난다”하였다.이는 마치 중읍과 앙산,두 작가가
만나는 경지와 같다 하겠거니와 만난 뒤에는 어찌 되었을까?
모두 물러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