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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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27
스님은 저녁나절에 입실(入室)하여 바싹 붙어서 운문스님에
게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 이 밥통아!강서와 호남에서도 그렇게 했겠구나!”
동산스님이 그 말에 크게 깨치고서 말하였다.
“제가 후일 인적(人迹)이 끊긴 곳에 암자를 세우고,한 톨의
쌀도 저축하지 않고 한 포기 채소도 심지 않고서 항상 시방(十
方)에 왕래하는 대선지식(大善知識)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자기
본래면목을 얽어매는)못과 문설주를 모조리 뽑아 주고,기름때
에 전 모자와 노린내 나는 적삼을 훌훌 벗어버려,그들 모두가
그지없이 청정[灑灑落落]한 경지에서 할 일 없는 사람이 되게
하겠습니다.”
“ 몸은 야자(椰子)씨 만한 게 주둥이는 커다랗게 벌리는구나.”
동산스님은 바로 하직하고 떠나갔다.그가 당시에 깨달았던
바는 단박에 탁 튀어나온 것이니,어찌 자그마한 견해와 같겠는
가?그 후에 세간에 나와 납승을 지도했다.
‘삼 세 근’이란 말을 여러 총림에서는 부처에 대한 답으로
알고 있다.“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물으면,“장림산 아래
있는 대나무 지팡이”또는 “병정동자(丙丁童子)가 불을 찾는구
나”라고 대답했으니,그저 모두들 부처와 관련지어 이러쿵저러
쿵했을 뿐이다.설두스님은 “동산스님의 ‘삼 세 근’을 만약 사
(事:현상적인 것)를 말하여 상대의 근기에 맞춰 준 것이라고
이해한다면,마치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 빈 골짜기로 들
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어느 세월에 (미혹에서)헤어날 수
있을까?
“꽃도 수북수북,비단도 수북수북하다”고 한 유래는 다음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