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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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다.어떤 스님이 지문(智門:설두의 은사)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삼 세 근이라 말한 뜻은 무엇입니까?
                   “꽃도 수북수북,비단도 수북수북하다,알았느냐?”
                   “ 모르겠습니다.”
                   “ 남쪽 땅엔 대나무,북쪽 지방은 나무이다.”
                   스님이 되돌아와서 이를 동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동산스님

                 은 “나는 그대에게 말하지 않고 대중에게 말하리라”고 대답하
                 고 드디어 상당(上堂)법문을 하였다.
                   “말로써는 사(事:현상적인 것)를 설명할 수 없고,말로써는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딱 들어맞게 설명할 수가 없다.말을 따
                 르는 자는 죽게 되고 구절에 얽매이는 자는 홀리게 된다.”
                   설두스님은 사람들의 정견(情見)을 타파하고자 고의로 이를
                 인용하여 하나로 뭉쳐서 송을 하였다.그런데 후인들은 도리어
                 정견(情見)을 내어 말하기를,“삼[麻]은 상복(喪服)이며,대나무

                 는 상주가 짚는 지팡이다.때문에 ‘남방에서는 대나무 지팡이를
                 쓰고 북방에서는 나무 지팡이를 쓴다’하였으며,‘꽃도 수북수
                 북,비단도 수북수북하다’는 것은 관(棺)의 머리 쪽에 그려 놓은
                 화초”라고 한다.부끄러운 줄을 알까?
                   ‘남쪽 땅의 대나무 북쪽 지방의 나무’라 한 것과 ‘삼 세 근’
                 은,아야(阿爺)와 아다(阿爹:둘 다 아버지라는 뜻으로 남쪽에서
                 는 爺,북쪽에서는 爹라 한다)가 서로 같다는 것을 전혀 모른

                 것이다.
                   옛사람이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주기 위해 하신 말씀은 결코
                 이 같은 의도가 아닐 것이다.바로 설두스님이 말한 “금까마귀
                 는 급히 날고 옥토끼는 빨리 달린다”는 것과 똑같아서,본래부
                 터 이는 한결같이 여유 있고 드넓다.다만 황금과 놋쇠를 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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