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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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殷淑儀)가 죽었을 때 제문을 지어 올리게 되었다.무제(武帝)
                 는 그 글을 보고서 크게 칭찬하면서 ‘초종에게 참으로 봉황의
                 깃털이 있다’하였다.”옛 시(두보의 시)에서는 다음과 같이 인
                 용한 바 있다.

                     조회 마친 소매 끝에 향기 가득 스며 있고

                     시를 지음에 붓끝엔 주옥이 구르네.
                     대대로 맡아 온 사륜(絲綸)의 아름다움을 알려는가
                     연못 위엔 지금 봉황 깃털이 있다.


                   지난날 영산회상에서 사부대중(四部大衆)이 구름처럼 모였는
                 데 세존께서 꽃을 드시니 오직 가섭만이 홀로 빙그레 미소를
                 지을 뿐,나머지는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설두스님은 이 때문
                 에 “8만 4천 대중은 봉황 깃털이 아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33인이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고 송했다.아난(阿難)이 가섭
                 존자에게 “세존께서 금란가사(金襴袈裟)를 전하신 외에 따로 어

                 떠한 법을 전했지요?”라고 묻자,가섭존자는 “아난아!”하고 불
                 렀으며,아난이 “네!”하고 대답했다.그러자 가섭이 이르기를
                 “문 앞에 서 있는 찰간(刹竿)대를 넘어뜨려 버려라”라고 했다.
                 아난은 드디어 깨치고 그 후 조사와 조사가 서로 전수하여 서
                 천과 중국 땅에서 서른세 사람이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솜씨가
                 있었던 것이다.옛사람의 말에 “호랑이 굴로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호랑이를 잡을 수가 있겠느냐?”고 하였다.운문스님도
                 이와 같은 사람이라서 훌륭하게 사생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
                 다.종사가 사람을 제접하려면 모름지기 이 같은 경지에 이르러

                 야만 된다.곡록목상(曲彔木牀:설법하는 의자)에 앉아서 제 스

              ‘왕부상시(王府常侍)’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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