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2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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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미닭이 쪼고 병아리가 쪼면 화상의 경지에서는 무엇이 되
                 겠습니까?”
                   “ 좋은 소식이다.”
                   “ 반대로 병아리가 빨고 어미닭이 쪼면 학인의 경지에서는 무
                 엇이 되겠습니까?”
                   “ 본래의 면목(面目)이 드러나지.”

                   이 때문에 경청스님의 문하에서는 줄탁의 기연이 있게 되었
                 다.이 스님 또한 그의 문하생인지라,그 집안의 일을 알고 있
                 었기에 이처럼 물은 것이다.“학인이 줄(啐)할 터이니 스님께서
                 는 탁(啄)을 해주십시오”라는 이야기를 동산스님의 문하에서는,
                 현상적인 것을 빌려 기틀을 밝힌 것[借事明機]이라고 한다.그
                 러나 어찌 병아리가 쪼면 어미닭이 쪼아 주는 것처럼 자연히
                 동시에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으리오.
                   경청스님 또한 훌륭하였다.이른바 손과 발이 서로 맞고 마

                 음의 눈이 서로를 척 알아보았다고 할 만하다.그러므로 “살아
                 날 수 있겠느냐?”고 대꾸하였다.그러나 그 스님 또한 훌륭했
                 다.기연을 맞출 줄을 알고서 한 구절에 빈(賓)․주(主)와 조(照)
                 ․용(用)과 살(殺)․활(活)을 갖추었다.스님이 “살아나지 못한다
                 면 다른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고 하자,경청스님은
                 “역시 형편없는 놈이다”고 하여 함께 진흙과 물속으로 들어갔
                 으니,경청스님의 솜씨가 참으로 거칠다 할 것이다.이 스님이

                 이 정도의 질문을 할 줄 알면서도 무엇 때문에 “역시 형편없는
                 놈이라”고 말하였을까?그러므로 작가의 안목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한다.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아서 (경청스님의 경
                 지에)도달했건 못 했건 몸을 잃고 목숨을 뺏기게 되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다면 곧 경청스님이 “역시 형편없는 놈이라”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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