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9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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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59
가 훌륭하다.
평창
향림(908~987)스님이 “오랫동안 앉아 있노라니 피곤하다”고
했는데,알겠느냐?알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이러니저러
니 말로)다투지 않겠지만,알지 못한다면 엎드려 판결 처분을
들어라.옛사람은 행각함에 벗을 사귀어,함께 수행하는 도반
(道伴)을 맺어 풀을 헤치고 조사의 가풍을 바라보았었다.
이때에 운문(864~949)스님은 광동의 남쪽 지방에서 널리 교
화했는데,향림스님은 멀리 서촉(西蜀)지방에서 오니 아호(鵝
湖)․경청(鏡淸:866~937)스님과 같은 시대였다.먼저 호남(湖
南)의 보자(報慈)스님을 참방하였고,그 뒤에야 운문스님의 회하
에 이르러 18년 동안 시자(侍者)를 하였다.운문스님의 처소에
서 몸소 체득하고 친히 들었으니 그가 깨달은 시기가 늦기는
했지만 참으로 그릇이 크다.
운문스님 곁에서 18년 간 기거하는 동안,운문스님은 항상
“원시자(遠侍者)야”라고 부를 뿐이었다.향림스님이 “예”하고
대답하기만 하면 운문스님은 “무엇인고”라고 하였다.향림스님
이 당시에 말로써 자기의 견해를 말씀드리고 알음알이를 써 봤
으나,끝내 계합되지 못했다.어느 날 갑자기 “제가 알았습니
다”라고 하자 운문스님이 말하였다.“왜 향상(向上)을 말하지
않느냐?”그리하여 또다시 3년을 더 머물렀다.운문스님은 방장
실에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기(大機)의 변론을 하곤 했는데 대
부분이 원시자가 그때그때마다 알아듣도록 깨달음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다.운문스님이 했던 한 말 한 구절은 모두 원시자가
간수해 두었다.
향림스님은 그 뒤 촉(蜀)땅으로 돌아가 처음에는 도강(導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