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0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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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궁(水晶宮:西川 迎祥寺의 天王院)에서 주지를 하다가,뒤
                 이어 청성(靑城)향림사(香林寺)의 주지가 되었다.지문 광조(智
                 門光祚)스님은 본디 절강(浙江)땅 사람으로 향림스님의 도력이
                 성하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촉 땅으로 들어가 참례하였다.지문
                 광조스님은 곧 설두스님의 스승이다.운문스님이 제접한 사람
                 이 수없이 많았으나 당대에 도를 행한 자로서는 오직 향림 일

                 파만이 가장 성대하였을 뿐이다.그는 사천(泗川)땅으로 돌아
                 가 향림원(香林院)에서 40년 간 주석하다가 80세의 나이로 입적
                 하였다.그는 일찍이 이르기를 “내가 40년 만에야 비로소 한결
                 같은 상태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대체로 대중 법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행각하며 선지식을 참방하려면 안목을 지니고서 모름지기
                 검고 흰 것을 분간하여 깊고 얕음을 살펴봐야만 된다.무엇보다
                 도 먼저 반드시 뜻을 세워야 한다.석가 노인도 수행의 인지(因

                 地)에 계실 때 나타내신 한마디 말,한 생각이 모두 입지(立志)
                 였었다.”
                   뒤에 어떤 스님이 “무엇이 (조사)실내의 한 등불입니까?”라
                 고 묻자,향림스님은 말하였다.
                   “세 사람이 증명하면 거북도 자라가 된다.”
                   “ 무엇이 가사 밑의 일입니까?”
                   “ 섣달의 불이 산을 태운다.”

                   예로부터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에 대한 답변은 매우 많
                 으나,오직 향림스님의 이 일칙(一則)이 온 세상 사람의 혀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그대들이 헤아리며 이러니저러니 말하
                 지 못하도록 하였다.
                   어떤 스님이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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