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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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67
정의 신하 모두는 노여운 기색을 띠면서 그 옳지 못함을 아뢰
었다.그러나 국사는 타심통(他心通)을 갖추고 있었으므로 먼저
황제를 배알하고 말하였다.“제가 제석천(帝釋天)곁에 있으면
서 내려다보니 좁쌀 뿌린 듯이 천자가 많은데,그 흥망이 마치
번갯빛이 번뜩이는 것 같았습니다.”그러자 황제는 더욱 정중히
공경하였다.대종이 즉위하자 다시 광택사(光宅寺)로 맞이하니,
16 년 간 주석하면서 근기에 따라 설법하다가,대력(大歷)10년
에 입적하였다.
산남부(山南府)의 청좌산(靑銼山)스님은 지난날 충국사와 함
께 수행했었다.국사는 일찍이 황제에게 아뢰어,그에게 조서를
내리도록 하여 세 차례 불렀으나 그는 오지 않고 항상 국사에
게 “명예를 탐하고 이(利)를 좋아하며 속세에 연연한다”고 꾸짖
었다.
국사는 그들 부자의 세 조정에서 국사가 되었으며,그들 부
자가 한결같이 모두 참선하였다. 전등록(傳燈錄) 에 의거하여
고증해 보면 본칙은 대종이 질문한 것이며,국사에게 “무엇이
십신조어사(十身調御士)입니까?”라고 물은 것은 숙종의 질문이
었다.
국사가 세상 인연을 마치고 열반에 들면서 대종을 하직하자,
대종이 “국사께서 돌아가신 뒤에 필요한 물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으니,이는 으레 있는 상투적인 물음인데,이 늙은이는
바람이 없는데 풍파를 일으키면서 “노승에게 무봉탑을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말해 보라,백일청천에 이처럼 하여 무
엇 하겠는가?그리고 탑을 만들면 그만이지 무엇 때문에 “무봉
탑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을까?대종 또한 참으로 작가 선지식
이다.그에게 한 번 내질러 말하기를,“스님께서 탑의 모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