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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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77
하나같이 손뼉을 친 것이다.저 서원(西園)*스님은 “기괴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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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였으며,현각스님은 또다시 말하였다.“말해 보라,구지스님
은 깨달았을까?깨쳤다면 무슨 까닭에 그가 안 것이라곤 거칠
다고 했으며,깨치지 못했다면 왜 또한 평생토록 한 손가락으로
선(禪)을 써도 다 쓰지 못했다고 말했을까?말해 보라,조산스님
의 뜻은 어디에 있을까?”
당시에 구지스님은 실은 알지 못했었다.그러다가 그가 깨친
뒤엔 묻기만 하면 한 손가락을 세웠다.무엇 때문에 모든 사람
들이 그를 묶으려 해도 묶지 못하며,그를 쳐부수려 해도 깨뜨
리지 못했을까?그대들이 만일 손가락 그 자체를 가지고 알려
고 한다면 결코 옛사람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이러한
선(禪)은 참구하기는 쉽지만 깨닫기는 어렵다.요즈음 사람들은
묻기만 하면 손가락을 세우고 주먹을 불끈 드는데,이는 망상분
별일 뿐,모름지기 뼛속에 사무친 투철한 견해가 있어야만 한
다.
구지스님의 암자에 한 동자가 있었는데 바깥에서 어느 사람
에게 “스님께서는 평소에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지도하시느
냐?”라는 질문을 받자,손가락을 일으켜 세웠다.동자가 되돌아
와 자기가 한 행동을 스님께 말씀드렸다.구지스님은 칼로 그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니,동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구지스
님이 소리를 질러 (동자를)부르니 동자는 머리를 돌렸다.이에
구지스님이 문득 손가락을 곧추세우니 동자는 훤히 깨치게 되
었다.말해 보라,동자는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를.
구지스님은 입적하는 즈음에 대중들에게 말하였다.“나는 천
룡스님의 한 손가락의 선(禪)을 깨치고서 평생토록 사용했으나
*삼성본에는 ‘西園’이 ‘西國’으로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