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8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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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지 못하였다.알겠느냐?”하고,손가락을 곧추세운 후 탈
연히 입적하셨다.
후에 애꾸눈 명초 용(明超龍)이 국태 심(國泰深)사숙(師叔)에
게 “옛사람이 이르기를 ‘구지스님은 단지 세 줄[三行]밖에 주문
을 못 외웠는데도 그의 명성은 많은 사람들보다도 뛰어났다’고
하였는데,어떤 것이 그가 외운 세 줄의 주문[三行呪]입니까?”
라고 묻자,심사숙(深師叔)또한 한 손가락을 세우자 명초스님
은 말하였다.“오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먼 타국에서 온 과주
객(瓜州客)을 알 수 있었겠는가?”말해 보라,그 뜻이 무엇인가
를.
비마(秘魔:817~888)스님은 일생 동안 나무집게 하나만 사
용하였고 타지(打地)스님은 묻기만 하면 한 차례 땅을 내리쳤을
뿐이다.그 후 다른 사람이 그의 몸뚱이를 숨겨 버리고 “무엇이
부처이냐?”고 묻자 그는 입을 쩍 벌렸는데,이 역시 일생토록
실컷 쓰더라도 모두 다 사용하지 못할 것이다.
무업(無業:759~820)스님은 말하였다.
“조사께서 이 땅에 대승이 근기(根器)가 있음을 보시고 오로
지 홑으로 심인(心印)을 전하여 미혹한 길을 열어 주셨다.이를
체득하는 데에는 어리석음과 지혜로움,범부와 성인과는 관계
없다.모름지기 속 비고 많은 것은,적으나마 알찬 것만 못하다.
대장부 녀석이 지금 이제 대뜸 쉬고서[休歇]바깥의 모든 인연
을 단박에 끊어 버리면,생사의 흐름을 초월하여 상것의 모습
[常格]을 완전히 벗어나,비록 따르는 무리가 많기를 원하지 않
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리라.”
무업스님은 일생 동안 혹 누가 묻기만 하면 “망상을 피우지
마라”고 했을 뿐이다.그리하여 이르기를 “한 곳을 꿰뚫으면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