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0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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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두)스님을 제접하리.눈먼 놈이구나.

               평창
                   설두스님은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에 능하여 막힘 없이 구
                 사하였다.까다롭거나 기특한 공안이 있으면 지나칠 정도로 송
                 (頌)하기를 좋아하였다.“구지스님이 하신 응대를 나는 좋아하
                 네.텅 빈 우주에 또한 누가 있으랴”하였다.요즈음의 학인들
                 은 옛사람을 비평할 때에 때로는 손님[賓]으로 때로는 주인[主]

                 으로 일문일답하여 정면에서 드러내어 학인을 지도하였다.그
                 리고는 “구지스님의 대응은 참 훌륭하다”고 한다.말해 보라,
                 설두스님이 그를 사랑한 것이 어느 점인가?천지가 개벽한 이
                 후 또한 누가 있었겠는가?오로지 구지 늙은이 하나 있었을 뿐
                 이다.만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뒤죽박죽이었을 것이다.오로지
                 구지 늙은이만이 한 손가락을 사용하면서 늙어 죽을 때까지 그
                 렇게 했다.사람들은 대부분 삿되게 이해하고서 “산하대지도 비

                 고,사람도 비고,법도 비어서,설령 우주가 일시에 텅 빈다 하
                 여도 오직 구지 늙은이 하나가 있을 뿐이다”고 말들 하지만 이
                 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일찍이 푸른 바다에 나무를 띄워”라는 말은 요즈음 말하는
                 ‘생사의 바다’이다.중생들은 업보의 바다[業海]를 오락가락하면
                 서 자신을 밝히지 못하여 이를 벗어날 기약이 없다.
                   구지 늙은이가 자비로써 중생을 제접하여 생사의 바다 가운
                 데에서 한 손가락으로 사람들을 제접하였다.이는 마치 나무를

                 띄워 눈먼 거북을 제접하는 것처럼 중생으로 하여금 피안(彼岸)
                 에 이르도록 하였던 것이다.
                   “파도치는 밤에 눈먼 거북을 제접했다”는 것은  법화경(法華
                 經) 의 “마치 외눈박이 거북이 떠내려오는 나무 구멍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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