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3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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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173


                 렵다.설두스님은 자비가 각별하여,다시 그대에게 말하기를
                 “맑은 연못에는 푸른 용이 살 수가 없다”고 하였다.은사이신
                 오조스님께서는 “나는 설두스님이 송고(頌古)하신 이 한 권 중
                 에서 ‘맑은 연못에는 푸른 용이 살 수가 없다’는 한 구절이 가
                 장 마음에 든다”고 하니,그래도 조금은 나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은 국사가 한참 동안 말없이 있었던 곳에서 살림

                 살이를 하는데 이처럼 이해한다면 모두 잘못된 것이다.
                   듣지 못하였느냐?“와룡(臥龍)은 고인 물에는 모습을 드러내
                 지 않는다.와룡이 없는 곳엔 달빛 어린 파도가 맑고,있는 곳
                 엔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물결이 인다”는 말을.또한 “와룡은 푸
                 른 연못이 맑아질까 미리 두려워한다”하기도 하였다.만일 이
                 러한 놈이라면 설령 큰 파도가 아득하고 아득하여 흰 물결이
                 하늘까지 넘실거린다 해도 그 속에 도사리고 있지 않는다.
                   설두스님은 이에 이르러 송을 마치고,맨 끝에서 상당한 안

                 목으로 하나의 무봉탑을 세우더니 바로 뒤이어 말하였다.“층층
                 이 우뚝하고 광채는 둥글둥글.천고만고에 사람들에게 보여주
                 는구나”하였는데,그대는 어떻게 보는가?바로 지금은 어느 곳
                 에 있을까?설령 그대가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해도 또한 언구
                 에 얽매어 그르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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