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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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31


                 시기를 “텅 비어서 성스럽다 할 것도 없다는 말씀을 꿰뚫어 아
                 는 사람이 있다면 (본래의)자기 집으로 돌아가 편안히 쉬리라.
                 똑같이 언어문자를 사용하면서도 무제를 위해 무명의 칠통을
                 깨뜨려 주었으니,그 중 달마스님은 그래도 훌륭하시구나”라 했
                 다.그리하여 말하기를,“한 구절을 깨치면 일천 구절,일만 구
                 절을 단박에 깨치리라”고 하였다.이와 같이 하면 자연히 꼼짝

                 달싹 못 하게 하여 콱 잡을 수 있을 것이다.옛사람이 말하기를
                 “뼈가 가루 되고 몸이 부서져도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나니 한
                 구절 분명히 깨달으면 백억 법문을 뛰어넘는다”고 하였다.
                   달마스님이 정면으로 그를 내질렀을 때 상당히 허점을 내보
                 였는데도 무제는 이를 알지 못하고서,도리어 인견(人見)․아견
                 (我見)에 사로잡혀 다시 “나와 마주한 그대는 누구십니까?”라고
                 물은 것인데,달마스님은 자비심이 너무나 많으셔서 또다시 그
                 에게 “모르겠다”고 말해 주었다.무제는 곧 눈이 휘둥그레지면

                 서 무엇이 핵심인지,이것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다.이쯤 되면
                 문제가 있고 없고에 관련 없이 말조차 할 수 없다.
                   백운 수단(白雲守端:1025~1072)스님이 송(頌)하였다.

                     화살을 쏠 때마다 으레 수리새를 명중시키지만
                     다시 화살을 뽑아 들어서는 짐짓 빗겨 쏘는구나.

                     곧바로 소실봉 앞에 되돌아가 앉았으니
                     양왕이시여,다시 불러오라는 말은 하지 마오.

                   다시 말하기를 “누가 불러오려는가?”했다.
                   무제가 이를 깨치지 못하니 (달마스님은)살며시 나라를 떠

                 나 버린 것이다.이 늙은이는 그저 부끄럼만 당하고 양자강을
                 건너 위나라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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