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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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33
에 돌아가셨고,달마스님은 보통(普通)원년(520)에야 중국에 왔
으니,7년이라는 차이가 있다.그런데 어떻게 해서 같은 시기에
서로 만났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이는 반드시 잘못 전해진 것
이다”고들 한다.그러나 전기(傳記)에 실린 바에 따를 뿐,여기
서는 그것이 사실이었는가는 따지지 않겠다.다만 그 요점만을
알면 된다.
말해 보라.달마스님이 관음인가,지공스님이 관음인가?어느
쪽이 진정한 관음인가?관음일진댄 무엇 때문에 둘만 있겠는가?
어찌 둘 뿐이랴,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당시 후위(後魏)의 광통율사(光統律師)와 보리 유지삼장(菩提
流支三藏)이 달마스님과 함께 논의하였는데,스님이 모습[相]을
배척하고 마음만을 가리켰다.편협하고 얽매인 지식을 지닌 그
들이었기에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해치려는 마음을 가지고서
여러 차례 독약으로 죽이려 했으니,그러기를 여섯 번째에 이르
러서는 교화의 인연도 다하고 법을 전할 사람도 생겼기에 마침
내 더 피하려 하지 않고 단정히 앉아 돌아가시니,웅이산(熊耳
山)정림사(定林寺)에 장례를 모셨다.
후위(後魏)의 송운(宋雲)이 사신으로 갔다가 총령(葱嶺:파미
르고원)에서 손에 한쪽 신만을 들고 가시는 스님을 만났다.무
제는 스님을 추모하여 스스로 비문을 지었다.
아!눈으로 보고서도 알아보질 못하였고,
만나고서도 알아모시지를 못했구나.
마주치고도 보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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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제나 원망스럽고 한스럽다.
*‘遇之不遇’는 당본(唐本)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