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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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스님이 그 첫 구절에 이 한 구절을 붙인 것은 참으로 좋다.
                   말해 보라,결국 어떻게 핵심을 알아차리겠는가를.설령 무쇠
                 눈과 구리 눈동자를 갖춘 사람이라도 찾지 못할진대,알음알이
                 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운문스님이 말하기를 “마치 마찰할 때
                 튀기는 돌의 불꽃,번뜩이는 번갯불과도 같다”고 하였다.이러
                 한 것은 헤아림[心機]과 뜻과 생각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그대가 입을 연들 어떻게 감당하겠는가?계교하는 마음
                 이 생길 때 새 잡는 매는 멀리 신라를 지나 버리리라.
                   그래서 설두스님은 “너희 천하 납승들은 언제 핵심을 알아차
                 릴 수 있을까?”라고 했던 것이다.
                   “나를 마주한 그대는 누구인가?”라는 구절에,‘모른다’는 설
                 명을 붙인 것은 설두스님이 노파심이 간절하여 거듭거듭 가르
                 침을 보인 곳이다.
                   말해 보라.‘공하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같은 말인가,다

                 른 말인가?깨친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깨치지 못한
                 사람의 경우라면 결국 양쪽 모두에 얽매일 것이다.세상에서 흔
                 히들 “설두가 (공안을)거듭 되풀이했다”하지만,이는 네 구절
                 로 공안을 모두 노래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뒤이어 또다시
                 자비의 마음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노래하여,“그래서 남몰래
                 강을 건너시니 가시덤불이 돋아나는 것을 어찌 면하랴”하였다.
                 달마스님이 본디 이 나라에 온 까닭은 사람들의 집착과 속박을

                 풀어 제거해 주며,속박하는 못과 말뚝을 뽑아 주며,가시덤불
                 을 없애 주려 함이었는데,도리어 무엇 때문에 “가시덤불이 돋
                 아난다”고 말했을까?이는 그 당시만을 두고 한 말이 아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의 발 아래에도 덤불이 무성하여 여러 길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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