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P. 52
52
겠는가?”라고 했다.법원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갑자기 나오면 어떠합니까?”
“ 매가 비둘기를 낚아채듯 하겠지만 그대는 믿지 않을 것이
다.죽음에 직면해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게 된다.”
“ 그렇다면 싹 움츠려 두 손을 가슴 위에 얹고 세 걸음 뒤로
물러나겠습니다.”
“ 수미산 아래의 검은 거북이 자꾸만 이마에 점 찍히기를 또
기다리네.”*
4)
이상과 같은 배경에서 “오제 삼황도 무슨 물건인고”라고 한
것이다.많은 이들이 설두스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만
“나라를 풍자했다”고 하니,이렇게 이해한다면 이는 정견(情見)
일 뿐이다.이는 선월(禪月:832~912)스님도 ‘제공자행(題公子
行)’이란 시에서 이르고 있다.
화려한 비단옷에 손에는 매를 들고
한가로이 걷는 모습 퍽이나 우쭐거린다.
농사의 어려움은 전혀 모르니
오제 삼황이 이 무슨 물건인고.
설두스님은 말하였다.“억울하다.뭐라고 말할 수가 없구나.
눈 밝은 납승이여,가벼이 굴지 마라.”많은 이들이 푸른 용이
사는 동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한다.설령 정수리에 안목을 갖추
고 팔꿈치 뒤에 부적[肘後符:道家의 護身符]을 갖춘 눈 밝은
납승이 온 천하를 비춰 보아도,여기에 이르러서는 결코 가벼이
굴지 마라.모름지기 이는 신중하여야 한다.
*신수대장경본에는 “須彌座下鳥龜子,莫待重遭點額回”라고 되어 있으나,여기에서
는 삼성본(三省本)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