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P. 54
54
설두스님은 착어(着語)했다.
“간파해 버렸다.”
-잘못되었다!그러면 그렇지 점검했구나.
덕산스님이 문 앞에 이르러 말하였다.
“경솔해서는 안 되지.”
-놓아주었다 잡아들이는군.처음에는 지나치게 뽐내더니 끝에는 지나
치게 굽실댄다.허물을 알면 반드시 고쳐야 하는 법이나 그럴 사람이
몇이나 있을는지.
그러자 몸가짐을 가다듬고 다시 들어가 뵈었다.
-여전히 이처럼 행동하는군.벌써 두 번 실패했군.위험!
위산스님이 앉으려 하니,
-냉철한 눈으로 이 늙은이를 보라.호랑이 수염을 만지려면 모름지기
이런 사람이라야 한다.
덕산스님이 (절을 하려고)좌구(坐具)를 집어들면서 “스님”하
고 불렀다.
-그저 겉모습만 바꿨구려.바람도 없는데 파도가 이는구나.
위산스님이 불자(拂子)를 잡으려 하자,
-모름지기 저런 놈이라야 된다.(장량처럼)방안에서 모든 전략을 짰
지만 어렵지 않게 앉아서 천하 사람의 혀를 꼼짝 못 하게 하는구나.
덕산스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는 소맷자락을 떨치며 나가
버렸다.
-불여우 견해로다.이 한 소리에는 방편도 있고 진실도 있으며 관조함
도 있고 활용함도 있다.자유자재하기가 마치 구름을 몰고 안개를 움
켜쥐려는 자와 같은 사람 중에서 더더욱 기특하다.
설두스님이 착어했다.“간파해 버렸다.”
-잘못되었다!그렇고말고.점검했군!
덕산스님은 법당을 뒤로하며 짚신을 신고 곧바로 떠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