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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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57


                 담스님이 말하기를,
                   “왜 너의 처소로 내려가지 않느냐?”
                   덕산스님이 드디어 “자 그럼”하고 인사를 드린 후 주렴을
                 걷고 나와 서려니 바깥이 칠흑처럼 캄캄하였다.다시 돌아와
                 “문 밖이 어둡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용담스님은 종이에 불을
                 붙여서 덕산스님에게 건네주었다.덕산스님이 이를 받아들려는

                 찰나에 용담이 ‘후’하며 바람을 불어 꺼버렸다.이에 덕산스님
                 이 활연하게 완전히 깨치고 절을 올리니,용담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보았기에 갑자기 절을 하는가?”
                   “ 저는 지금 이후부터 다시는 천하 선사스님네들의 말씀을 의
                 심하지 않겠습니다.”
                   그 이튿날 용담스님이 상당(上堂)하여 법문을 하였다.
                   “만일 이빨은 칼로 된 숲과 같고 입은 시뻘겋게 크게 벌리며
                 한 방망이 얻어맞고도 뒤도 안 돌아보는 놈이 있다면,후일 그

                 는 고봉정상에서 나의 도를 세울 것이다.”덕산스님이 드디어
                  금강경  주석서를 법당 앞에 가져다 놓고 횃불을 들고 말하였
                 다.“현묘한 변론을 다하여도 마치 넓은 허공에 하나의 털을 둔
                 것과 같고,세간의 가장 중요한 것을 모두 갖추었다 해도 이는
                 큰 바다에 물 한 방울을 던지는 것과 같다.”말을 마치고 이를
                 태워 버렸다.
                   그 후 위산스님의 교화가 성대하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위산

                 스님을 찾아가 작가 선지식의 솜씨로 상대해 보려 하였다.이에
                 짐도 풀지 않고 곧장 법당으로 올라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
                 으로 왔다갔다하다가 돌아보면서 “없다,없어!”하고서 곧 나가
                 버렸다.말해 보라,그 뜻이 무엇인가를.미친 게 아닐까?많은
                 사람들은 이를 잘못 이해하고 (덕산스님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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