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P. 67

벽암록 上 67


                   덕산스님이 한 방망이를 때리고서는 “뭐라고 말했지?”라고
                 하였는데,이로 말미암아 깨침이 있었다.
                   그 후 오산(鰲山)에서 폭설로 길이 막히자 암두(巖頭:827~
                 887)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당시 덕산에 있을 때 몽둥이가 떨어지자 통(桶)밑바닥
                 이 쑤욱 빠진 것 같았네.”

                   암두스님이 소리 지르더니 말하였다.
                   “그대는 모르는가?(감각기관의)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집안
                 의 보물이 아니라,모름지기 자기의 가슴속에서 흘러나와 하늘
                 을 덮고 땅을 덮어야만이 비로소 조금은 들어맞는다는 것을.”
                   설봉스님이 완전히 깨치고 예배하며 말하였다.
                   “사형(師兄)이여!오늘에야 비로소 오산에서의 도를 깨쳤습니
                 다.”
                   요즈음 사람들은 그저 “옛사람을 일부러 만들어서 후세 사람

                 들에게 그 법규를 따르도록 하였다”고들 말한다.만일 이와 같
                 다면 이것이야말로 옛사람을 비방하는 것이니,이것을 두고 부
                 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이라 한다.옛사람들은 요즈음 사람처럼
                 구차하지 않았다.일상수행에서 일언반구조차도 쓰지 않았다.
                 으뜸가는 가르침을 세워 불교 수명(壽命)을 이어간다면,한마디
                 말,반 글귀[一言半句]를 내뱉어도 자연히 천하 사람의 혀를 꼼
                 짝 못 하게 한다.사량분별하거나 이러쿵저러쿵할 여지가 없다.

                   그의 이 대중법문을 살펴보니,그는 일찍이 작가(作家)의 도
                 리를 알아차렸으므로 작가의 겸추(鉗鎚:망치와 집게)를 가지고
                 서,아무리 일언반구를 내뱉어도 알음알이로 헤아려 귀신의 굴
                 속에서 살림살이를 하지 않고,많은 사람 중에 뛰어나 고금의
                 모든 이를 꽉 거머쥐고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그들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