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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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로써 일시에 다 말해 버렸구나.
설두스님이 세 번째 구절에서는 가느다란 (방편의)길을 터
놓고 풍규(風規)를 조금 드러내 보였으니,벌써 이는 낙초(落
草:비천한 지위에 떨어짐을 비유함)이며,네 번째 구절 또한
그대로 낙초이다.만일 말 위에다 말을 보태고 구절 위에다 구
절을 보태고,의근(意根)위에다 의근을 내어 헤아려서 이해하
려 한다면 노승(원오스님 자신)에게 누를 끼칠 뿐 아니라,설두
스님까지도 저버리는 것이다.옛사람의 언구는 비록 이와 같으
나 그 의도는 이와 같지 않으니,끝내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로써
사람을 얽어 묶지는 않는다.
“조계의 거울 속에 티끌이 없다”했는데,사람들이 더러는
“고요한 마음이 바로 거울이다”라고 하나,좋아하시네!전혀 관
계가 없다.이는 다만 말로 이리저리 따졌을 뿐이니 어찌 (윤회
를)끝마칠 기약이 있겠는가?이는 본분(本分)의 말이므로 산승
(나)인들 감히 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소머리 귀신이 죽으니 말머리 귀신이 되돌아온다”고 설두스
님은 분명히 말하였는데도 사람들이 스스로 보질 못하였다.그
때문에 설두스님이 이처럼 어줍잖게 송하여 말하기를 “북을 쳐
보아도 그대는 보질 못하네”라고 한 것이다.어리석은 사람이
보겠는가?
다시 그대에게 말하기를 “봄날의 온갖 꽃 누굴 위해 피었느
냐?”고 하니,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그대에게 일시에 분명하게
내보여준 것이다.봄이 되어 깊은 골짜기와 들녘 시냇물,나아
가 인적 없는 곳까지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니,그대는 말해 보
라,참으로 누구를 위하여 꽃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