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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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설두스님이 공안 일백칙(一百則)을 송(頌)하면서 매 칙마다
향을 올리고 이를 써냈다.이 때문에 세상에 크게 유행하게 된
것이다.그는 문장도 이해하고 공안을 꿰뚫고 드넓게 익힌 후에
붓을 들었다.왜 이처럼 했을까?용과 뱀은 분별하기 쉽지만 납
승을 속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설두스님은 이 공안을 확철히
깨치고 마디마디 어려운 곳에 세 구절의 착어를 붙여 송하였다.
“설상가상이군.하마터면 위험할 뻔했군.”그렇다면 덕산스님
은 어떤 사람인가?이는 참으로 이광(李廣)을 닮았다.이광은 타
고난 천성이 활쏘기를 좋아하였는데,천자[漢 孝文帝]가 그를
비기장군(飛騎將軍)에 봉하였다.그는 오랑캐의 나라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선우(單于:匈奴族의 왕)에게 사로잡혔다.
당시 이광은 상처를 입었으므로 두 마리 말을 묶어 누울 수
있게 마련한 후 그 사이에 누웠다.이광은 죽은 체하고 있다가
그 곁에 훌륭한 말을 타고 가는 한 오랑캐를 엿보았다.이에 몸
을 솟구쳐 말에 오르는 순간 오랑캐를 밀쳐 떨어뜨리고 그의
활과 화살을 빼앗아 말을 채찍질하여 남쪽으로 달리면서 추격
해 오는 기마병을 활로 쏘아 격추시켰다.그리하여 그곳을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이다.그에게 그러한 솜씨가 있어 죽음 속에서
다시 살아날 수가 있었다.설두스님은 송에서 이를 인용하여 덕
산스님을 다시 들어가 뵙고는 의연히 도망 나올 수 있게 된 것
을 비유하였다.
저 옛사람(위산스님)을 살펴보면,견처(見處)도 말도 수행도
용처(用處)도 참으로 영특하다고 하겠다.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솜씨가 있어야만이 비로소 그 자리에서 부
처를 이룰 수 있으며,그 자리에서 부처를 이룬 사람이어야 자
연히 사람을 죽이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비로소 자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