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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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73


                   영수(靈樹)의 여민(如敏:?~920)스님이 20년 동안 수좌를 뽑
                 지 않고 항상 “내 수좌가 태어났다”고 하였으며,또한 “내 수좌
                 가 수행[牧牛行]을 하고 있다”하였으며,또다시 “내 수좌가 행
                 각한다”고 말하곤 했다.갑자기 하루는 종을 치게 하고 삼문(三
                 門)앞에서 수좌를 맞이한다고 하니,대중들이 모두 의아해하였
                 다.운문스님이 과연 이르자 바로 그를 수좌료(首座寮)로 맞이

                 해 짐을 풀게 하였다.사람들이 영수를 일컬어 지성선사(知聖禪
                 師)라 하니 스님은 과거와 미래의 일들을 모두 미리 알았던 것
                 이다.
                   하루는 광주(廣州)의 왕 유은(劉隱:874~911)이 군사를 일으
                 키기에 앞서 몸소 사원을 찾아가 스님께 성패 여부를 알려주기
                 를 청하려 하였다.영수스님은 이를 먼저 알았으나 가만히 앉아
                 서 입적한 뒤였다.광주의 왕은 성을 내면서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언제 병이 나셨는가?”

                   시자가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병이 나신 적이 없으십니다만,아까 작
                 은 상자 하나를 봉하여 놓으시고 왕이 오거든 드리라고 하셨습
                 니다.”
                   왕이 상자를 열어 보니 한 통의 편지가 있었는데 “인천(人天)
                 의 안목(眼目)은 이곳에 있는 수좌로다”라고 씌어 있었다.왕이
                 그 뜻을 깨닫고 드디어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 운문스님에게 세

                 상에 나와 영수의 주지가 되어 주기를 청하였다.그 뒤 마침내
                 운문의 주지가 되었다.
                   스님께서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니,국 상시(鞠常侍)가 운문
                 스님에게 물었다.
                   “영수(靈樹)의 과일이 익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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