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P. 74
74
“어느 해인들 아직 설익었다[生]고 여길 수 있으리오!”다시
광주 유왕(劉王)을 맞아 그의 전생은 향 장수였다는 인연들을
말해 주니,그 후 유왕은 영수스님께 ‘지성선사(知聖禪師)’라는
시호를 하사하였다.영수스님은 세세생생에 신통력을 잃지 않
았지만,운문스님은 삼생(三生)동안 왕이 된 까닭에 신통력을
잃게 된 것이다.
하루는 유왕이 스님에게 조서(詔書)를 보내어 대궐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시게 했다.몇몇의 큰스님들과 함께 여인[內人]들의
인사를 받으며 설법을 하는데,오직 스님만은 말도 안 하고 남
들과 가까이하지도 않았다.한 직전사(直殿使)가 벽옥전(碧玉殿)
위에 다음과 같은 게송을 붙여 놓았다.
큰 지혜로 수행하는 것이 비로소 선(禪)일지니
선문(禪門)이란 말이 없어야지 시끄러워서는 안 된다.
온갖 교묘한 설법이라도 어찌 참다움만 하리오.
운문에게 져서 모두 말을 못 하는구나.
운문스님은 평소에 세 글자로 선(禪)을 말하기 좋아하였는데,
즉 “‘살펴보아라[顧]’,‘비추어 보아라[鑑]’,‘아이쿠[咦]’”가 그것
이다.또 한 글자로 선을 말하기도 하였는데,어느 스님이 묻기
를,“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살해한 자는 부처님 앞에 참회하겠
지만,부처와 조사를 죽이면 어느 곳에서 참회를 해야 합니까?”
라고 하자,운문스님은 “노(露:숨기지 말고 드러내라)”라고 말
하였으며,또한 “무엇이 정법안장(正法眼藏)입니까?”라고 묻자,
“보(普:어디에나 있다)”라고 하였다.참으로 머뭇거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알기 쉬운 것에 대해서도 사람을 꾸짖었으나
만일 한 구절의 말을 했다 하면 마치 쇠말뚝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