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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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위해서였다.설법을 끝내고서는 스스로 대신하여 “나날이 좋
은 날이다”하였으니,이 말은 고금을 관통하여 예로부터 훗날
까지를 일시에 꼼짝달싹 못 하게 했다.
산승이 이처럼 말하는 것 또한 말을 따라서 알음알이를 낸
것이라 하겠다.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것보다
어렵지 않다.이러니 저러니 말하자마자 구덩이에 떨어진다.운
문스님의 한 구절 속에 세 구절[三句]이 갖춰 있으니,이는 모
두 그의 종지(宗旨)가 이와 같기 때문이다.한 구절의 말일지라
도 모름지기 근본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만일 그렇지 못하면 그
것은 두찬(杜撰)일 뿐이다.이 일은 많은 말이 필요 없지만,투
철하게 알지 못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만약 투철하게 깨치게
되면 곧 옛사람의 뜻을 알아차릴 것이다.설두스님이 지은 언어
문자를 보도록 하자.
송
하나[一]를 버리고
-구멍투성이구나.어느 곳으로 가는고?한번 봐준다.
일곱을 드러내니
-드러내지도 않고 그렇다고 봐주지도 않는다.
상하 사방에 견줄 것이 없다.
-무엇인고?위는 하늘 아래는 땅,동서남북과 사유(四維)에 무슨 견줄
것이 있겠는가?주장자가 나의 손안에 있는 것을 어찌하랴?
천천히 걸으면서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버리고
-발 아래를 묻지 마라.체득하기 어렵다.언어문자의 굴속으로 들어가
버렸구나.
내키는 대로 바라보며 나는 새의 자취도 그려내노라.
-눈 속에도 이런 소식은 없다.불여우 같은 알음알이여,여전히 옛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