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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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많이들 알음알이[意識]가운데 떨어져 있으나 모름
                 지기 어구(語句)가 생기기 이전의 것을 알아야만 한다.대용(大
                 用)이 앞에 나타나면 자연히 보게 되리라.그 때문에 석가 어르
                 신네는 성도한 뒤 마갈제국(摩竭提國)에서 스무하루 동안 이 같
                 은 일을 생각하였다.
                   “모든 법의 적멸한 모습은 말로써 드러내지 못하니 내 차라

                 리 설법하지 않고 어서 열반에 들어가야지.”
                   여기에 이르러 입을 열 곳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다.그러
                 나 방편으로서 다섯 비구[五比丘]를 위하여 법문을 설하고 삼백
                 육십 법회에 이르도록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말씀하셨지만 이는
                 방편일 뿐이다.때문에 천자의 의복을 벗어버리고 헤어지고 때
                 묻은 옷을 입고서 부득이하여 얕고 가까운 제이의문(第二義門)
                 으로 많은 제자들을 인도했던 것이다.만일 그들에게 위로 향하
                 는 제일의제(第一義諦)를 모두 제시했다면 그것을 이해할 이는

                 한 명은커녕 반 명도 없었을 것이다.
                   말해 보라,무엇이 제일구(第一句)인가를.이쯤에 설두스님은
                 본뜻을 조금 노출하여 사람들이 알도록 하였다.그대는 위로는
                 부처가 있다고 알아서도 안 되고 아래로는 중생이 있다고 알아
                 서도 안 되며,밖으로는 산하대지가 있다고 알아서도 안 되고
                 안으로는 견문각지(見聞覺知)가 있다고 알아서도 안 된다.마치
                 완전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처럼 길고 짧음과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지 말고)하나로 이루어,낱낱이 드러내어 끝
                 내 다른 견해가 없도록 하라.그런 뒤에 적절하게 응용하여야
                 비로소 그가 말한 “하나를 버리고 일곱을 드러내니,상하 사방
                 에 견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만일 이 구절을 확철히 알면 “상하 사방에 견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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