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0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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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구나.
                   비록 “서서히 걸으며 흐르는 물소리를 밟아 버렸다”고 할지
                 라도 옳지 않으며,“내키는 대로 바라보며 나는 새의 자취마저
                 도 그려낸다”는 것도 옳지 않고,“풀은 더부룩하고 연기는 자욱
                 하다”는 것도 옳지 않다.설령 모두가 이렇지 않다 하여도 바로
                 이는 ‘수보리가 앉은 바윗가에 꽃이 가득한 것’이니,모름지기

                 이 부분을 돌이켜봐야 한다.
                   왜 듣지 못하였는가?수보리가 바위에 앉아 선정에 들어 있
                 노라니 하늘 신들이 꽃비를 내려 찬탄했던 일을.수보리존자는
                 말하였다.
                   “공중에서 꽃비를 내리며 찬탄하는 것은 대체 누구인가?”
                   하늘 신이 말하였다.
                   “나는 제석천왕(帝釋天王)입니다.”
                   “ 그대는 어찌하여 찬탄하는가?”

                   “ 나는 존자께서 반야바라밀다를 훌륭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 나는 반야에 대하여 일찍이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
                 대는 무엇 때문에 찬탄하는가?”
                   “ 존자께서는 말씀하심이 없고,저는 들은 바 없으니,이것이
                 참된 반야입니다.”
                   이에 또다시 땅을 진동하며 꽃비를 내렸다.

                   설두스님은 또한 일찍이 이에 대해 송하였다.

                     비 개이고 구름 머무른 새벽 반쯤 열리니
                     몇몇 산봉우리 그림처럼 높푸르다.
                     수보리는 바위에 앉았다는 생각조차 없는데

                     하늘에서 꽃비 내리고 땅을 진동케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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