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1 - 선림고경총서 - 35 - 벽암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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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上 81
제석천왕이 이미 땅을 진동하며 꽃비를 내렸으니,여기에 이
르러서 결코 어느 곳에 숨겠는가?
설두스님은 또 말하였다.
나는 도망하려 해도 아마 도망하지 못하리라.
온 세계의 바깥까지 모두 가득 차 있다.
바쁘고 요란스러움은 언제 다할까?
팔방에 맑은 바람 옷깃을 스치누나.
비록 알몸으로 벌거벗듯 청정하고 해맑아서 전혀 가는 솜털
만한 허물조차 없다 할지라도 지극한 법[極則]은 아니다.그렇
다면 어찌하여야 하는가?아래 문장-손가락을 퉁기며 슬픔을
가누는 순야다신이여!-을 보라.
범어(梵語)인 순야다(舜若多:sūnyatā)는 여기 말로는 허공신
(虛空神)이다.이것은 허공으로 몸을 삼아 몸에 감각이나 촉감
이 없고,부처님의 광명이 비춰야만이 비로소 몸이 나타난다.
그대가 만일 순야다신처럼 된다면,설두스님은 바로 손가락을
퉁기며 슬픔을 가눌 것이다.또한 “꼼짝하지 마라”하였는데,
움직이면 어떠할까?백일청천(白日靑天)에 눈뜨고 조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