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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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내한(蘇內翰:소동파)이 조각(照覺)선사를 뵙고 송을 하였
                 다.

                     시냇물 소리 장광설(長廣舌)이요,
                     산색인들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랴.
                     밤사이 팔만 사천의 게송을
                     다른 날 어떻게 사람에게 일러줄까?


                   설두스님은 흐르는 물소리를 빌려 한바탕 설법을 했다.그러
                 므로 “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듣지 못하였
                 느냐?구봉 도건(九峰道乾)스님의 말을.“목숨[命]을 아느냐?흐
                 르는 물은 목숨이요,맑고 고요한 것은 몸이며,일천 파도가 다
                 투어 일어나는 것은 문수의 가풍이요,하나같이 맑은 허공은 보
                 현의 경계이다.”
                   “ 흐르는 물소리 비파여라.한두 곡조도 아는 이 없다”하였

                 는데,이러한 곡조는 모름지기 지음(知音)이어야 알 수 있으며,
                 해당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부질없이 귀만 기울이고 있을 뿐이
                 다.옛사람은 “귀머거리가 호가(胡家)라는 노래를 부르지만,좋
                 고 나쁨과 높낮이를 전혀 듣지 못한다”고 하였으며,운문스님은
                 “말해 주어도 돌아보지 않으니 서로가 어긋났다.이를 생각으로
                 헤아린다면 어느 세월에 깨닫겠는가?”라고 했다.거량은 본체이
                 며,돌아보는 것은 작용이니,말하기 이전과 조짐이 나뉘기 전

                 에 볼 수 있다면 핵심이 되는 길목[要津]마저도 꽉 막을 수 있
                 다.만약 조짐이 나뉘자마자 이를 보면 조(照)․용(用)이 있는
                 것이며,조짐이 나뉜 뒤에 본다면 사량분별[意根]에 떨어진다.
                   설두스님은 자비심이 대단하여 다시 그대들에게 “비 개인 밤
                 못엔 가을 물이 깊다”고 말해 주었다.이 송에 대해서 일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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