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5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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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75
였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겼는데 도장을
떼면 집착하는 것이고 누르면 망가져 버린다.떼지도 못하고 누
르지도 못할 경우 도장을 찍어야 옳을까 찍지 않아야 옳을까?”
이는 돌 사람[石人]이나 나무 말[木馬]의 기봉과는 다르며,
마치 무쇠소의 기봉처럼 생겨서,그대가 흔들거나 움직이게 할
수가 없다.그대가 도장을 떼었다 하면 도장이라는 집착이 남아
있고,눌렀다 하면 망가져 버리어 산산조각 난다.도장을 떼지
도 않고 누르지도 못할 때 찍어야 옳을까,말아야 옳을까?이
말을 살펴보면 낚시 끝에 미끼가 있었다고 할 만하다.
그때 법좌 아래에 노파(盧陂)장로가 있었는데,그 또한 임제
스님 회하의 큰스님이었다.감히 앞으로 나와 기봉을 겨루면서
대뜸 그에게 화두를 던져 질문을 했으니,참으로 기특하다 하겠
다.“저에게 무쇠소의 기봉이 있습니다.스님께서는 인가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지만 풍혈스님 또한 작가인 것을 어찌하랴.
그러므로 망설이지 않고 그에게 대답하기를 “고래를 낚아 바다
를 맑게 하는 데는 익숙하지만 개구리 걸음으로 진흙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짓이야 안 하지”라고 하였다.
이는 말 가운데 심금을 울리는 메아리가 담겨 있다.운문스
님도 말하기를 “사해에 낚시를 드리움은 사나운 용을 낚으려
함이요,격식 밖의 현묘한 기봉은 지기(知己)를 찾기 위함이라”
고 하였다.큰 바다에 열두 마리의 물소(비구)를 낚시 미끼로
삼았으나 개구리 한 마리를 낚았을 뿐이다.이 말은 현묘한 것
도 없고 이러쿵저러쿵 계교함도 없다.옛사람은 말하기를 “사
(事)의 측면을 살펴보는 것은 쉽겠지만 생각[意根]으로 헤아리
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