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1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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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71
“동쪽에서 오는 길입니다.”
“ 작은 강을 건너 왔느냐?”
“ 큰 배는 허공을 건너가니 작은 강은 건널 수 없습니다.”
“ 거울 속에 비친 경치와 그림 속의 산은 새들도 건너가지 못
하는 것이니,그대는 남들이 남긴 말을 엿듣지 마라.”
“ 큰 바다도 전함의 위세를 겁내며,은하수를 나는 돛단배가
오호(五湖)를 건넙니다.”
경청스님이 불자를 곧추세우며 말하였다.
“‘이걸’어찌하겠는가?”
“ 이게 뭔데요?”
“ 그럼 그렇지,모르는군.”
“ 출몰(出沒)과 권서(卷舒)를 스님과 함께합니다.”
“ 점치는 사람의 헛소리를 듣고 깊은 잠꼬대를 하는구나.”
“ 늪은 넓어서 산을 숨길 만하고,이리가 표범을 굴복시킵니
다.”
“ 죄를 용서해 줄 터이니 속히 나가도록 하라.”
“ 나가면 잃을 것입니다.”
곧 밖으로 나와 법당에 이르러 혼자서 중얼거렸다.
“대장부가 공안을 깨치지 못했는데 어찌 그만둘 수 있으랴.”
이에 다시 방장실을 찾아가니 경청스님은 막 앉으려는 참이
었는데 대뜸 여쭈었다.
“제가 조금 전에 무지한 견해로 스님을 모독하였습니다.엎
드려 바라오니 스님께서는 자비로 용서해 주소서.”
“ 조금 전에 동쪽에서 왔다 했으니,아마 취암(翠巖)에서 온
것이 아니냐?”
“ 설두스님은 보개(寶蓋)의 동편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