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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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73


                   “훌륭하구나.자,앉아서 차나 마시도록 하라.”
                   풍혈스님이 처음 남원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문에 들어서도
                 절을 올리지 않자,남원스님은 말하였다.
                   “남의 집에 가서는 주인을 알아야지.”
                   “ 스님께서 단적으로 일러주십시오.”
                   남원스님이 왼손으로 한 차례 무릎을 치자,풍혈스님이 대뜸

                 일갈(一喝)을 하였다.
                   남원스님이 오른손으로 다시 무릎을 치자,풍혈스님은 또다
                 시 일갈을 하였다.이에 남원스님은 왼손을 들고서 “내가 이것
                 을 어떻게 하리라 생각하느냐?”하고 다시 오른손을 들고서 말
                 하였다.
                   “이것은 또…….”
                   “ 눈이 멀었습니다.”
                   이윽고 남원스님이 주장자를 집어들자 풍혈스님이 말하였다.

                   “무엇을 하시렵니까?제가 주장자를 빼앗아 스님을 칠 것이
                 니,말하지 않았다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남원스님은 바로 주장자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오늘 이 누렁이 절강(浙江)놈한테 한바탕 바보가 되었구나.”
                   “ 스님께서는 바리때도 없으면서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과 꼭 같군요.”
                   “ 스님은 전에 여기에 온 적이 있었던가?”

                   “ 무슨 말씀입니까?”
                   “ 참 잘 물었네.”
                   “ 그래도 그냥 용서해 줘서는 안 되겠군요.”
                   “ 자,앉아서 차나 마시게.”
                   그대들은 보아라.준수한 사람은 스스로의 기봉이 높아 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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