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6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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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장로가 한참 생각에 잠기자”라는 것은 그것을 보고서도
얻지 못하면 천 년이 되도록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다.애석
하다.그러므로 “일천 권의 경론을 강할 수 있어도,한 구절의
기봉에 임해서는 입 벌리기가 어렵다”고 하였다.실로 노파장로
는 좋은 말을 찾아 대답하기 위해 (말해 보라는 풍혈스님의)명
령을 따르지 않다가,대뜸 깃발을 꺾고 북을 빼앗는 풍혈스님의
기봉에 당해 버렸다.완전히 핍박당해 어찌할 수 없게 돼버린
것이다.속담에 “전쟁에 지면 청소하는 종을 면치 못한다”고 하
였다.애당초 반드시 창 쓰는 법을 배워 두었다가 그와 겨루었
어야 하니,그대에게 가르쳐 주기를 기다렸다가는 머리는 벌써
땅 위에 나뒹굴게 될 것이다.
목사 또한 오랫동안 풍혈스님 밑에서 참구하였으므로 “불법
과 왕법이 한가지군요”라고 말할 줄 알았다.
풍혈스님은 말하였다.
“그대가 무슨 도리를 보았는가?”
“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난을 초래하게 됩니
다.”
풍혈스님은 완전히 정신이 한 덩어리로 되어 있었다.그는
마치 물위에 떠 있는 호로병과 같았다.잡으려 하면 빠져나가고
누르면 움직여서,근기에 맞추어 설법할 줄을 알았던 것이다.
근기에 맞추지 않았다면 도리어 허튼 말을 했을 것이다.풍혈스
님이 대뜸 법좌에서 바로 내려와 버렸다.
이는 임제스님 사빈주(四賓主)의 화두와도 같다.참선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자세히 보아야 한다.빈․주가 서로 만나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과 같다.혹은 사물을 빌려서 형상을
보이기도 하며,혹은 본체를 고스란히 활용하기도 하며,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