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P. 94
94
“그런 소리는 없다.”
“ 천지가 생긴 뒤에는 어떠합니까?”
“ 저마다 시간을 알겠지.”
투자스님의 평소의 문답이 다 이와 같았다.
조주스님이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고 묻자,“야간통행하지 말고 날이 밝거든 가거라”라고
대답했다.이는 마치 전광석화와 같으니 향상인(向上人)이어야
이처럼 할 수 있다.완전히 죽은 사람에게는 불법이라 할 것도,
현묘이니 아니니 할 것도,시비․장단도 전혀 없다.여기에 이
르러서는 그저 쉴 뿐이다.
옛사람(운문스님)은 이를 “아무것도 아닌 데서 죽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다.가시덤불을 지날 수 있어야만이 좋은 솜씨이
다”라고 했다.모름지기 ‘저곳’을 뚫고 지나가야 할 것이다.그
렇지만 요즈음 사람은 이런 상태에 이르러서는 뚫고 가기 어렵
다.만일 의지하거나 알음알이로 이해한다면 이와는 전혀 관계
가 없다.이를 위산 철(潙山喆)스님은 “견해가 말쑥하지 못한
것”이라 하였고,은사이신 오조(五祖)스님께서는 “명근(命根)이
끊어지지 않은 것”이라 하였다.모름지기 완전히 한 번 죽었다
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절중(浙中)의 영광(永光)*스님은 말했다.“언어의 기봉이 조금
8)
만 어긋나도 고향 가는 길은 천리 만리 멀어진다.모름지기 깎
아지른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만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죽었
다가 다시 소생하는 도리 그대를 속일 수 없고,뛰어난 종지 뉘
라서 숨길[廋]*수 있겠는가?”
9)
*삼성본에는 ‘영안(永安)’으로 되어 있으나,당본(唐本)과 오등회원 등을 참조하
여 ‘영광(永光)’으로 고쳤다.
*瘦:所와 留자의 반절.뜻은 숨기다[匿]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