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0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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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기에 이러한 것은 없다.긴 것은 긴 대로,짧은 것은 짧은 대
로,푸른 것은 푸른 대로,누런 것은 누런 대로…….그대들은 어디에
서 볼 것인가.
서리 내린 하늘에 달은 지고 밤은 깊은데
-그대들을 끌고서 (번뇌의)풀 속으로 들어가 버렸군.온 세계에 감출
수는 없다.절대 귀신의 굴속에 머무르려 하지 마라.
누구와 함께하랴,맑은 연못에 차갑게 비치는 그림자를.
-(그럴 사람이)있느냐,있느냐?한 침상에서 잠자지 않았다면 이불 밑
이 뚫렸음을 어떻게 알까?근심에 젖은 사람은 근심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마라.근심하는 사람에게 말하면 근심만 더하게 할 뿐이다.
평창
남전스님이 잠꼬대를 조금 했더니 설두스님은 큰 잠꼬대하
네.꿈을 꾸긴 했지만 좋은 꿈이었구나.앞에서는 모두가 같다
고 하더니만 여기에서는 같지 않다고 말하네.“듣고 보고 느끼
고 아는 것이 따로따로가 아니며,산과 물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고 하였다.만일 거울 속에 있는 산하를 구경한 뒤에
야 깨칠 수 있다고 말한다면,거울이라는 것을 여의지 못한 것
이다.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을 거울로써 비춰 보지 마라.거울로
써 비춰 보면 바로 두 개가 되는 것이다.오로지 산은 산,물은
물로서,모든 법이 법의 제자리에 안주하고,세간의 모습이 항
상 그대로 있을 뿐이다.
“산하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고 하였는데,말해 보
라,무엇으로 비춰 봐야 할까?알겠느냐?이렇게 되자 “서리 내
린 하늘에 달은 지고 밤은 깊은 데”로 향하였다.여기서는 그대
와 함께하였지만,‘저쪽’은 그대 스스로가 헤아려야 한다.설두
스님이 본분의 일[本分事]로써 사람을 지도하였음을 알겠느냐?
“누구와 함께하랴,맑은 연못에 차갑게 비치는 그림자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