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선림고경총서 - 36 - 벽암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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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中 89


                 잃어버리게 하는 것과 같다.그대들이 아무것도 아닌 데서 거꾸
                 러진다면 미륵 부처님이 하생(下生)한다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이는 꿈속에서 꿈을 깨려 해도 깨지 못하다가 곁의 사
                 람이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남전스님의 안목이 바르지 못했다면,분명 그에게 휘말렸을
                 것이다.남전스님의 이러한 말을 살펴보면 매우 이해하기 어렵

                 다.만약 안목이 살아 움직이는 자가 듣는다면 으뜸가는 제호
                 (醍醐)의 맛과 같겠지만,죽은 자가 듣는다면 도리어 독약이 될
                 것이다.
                   옛사람의 말에 “만일 사(事)의 측면에서 이해하면 상정(常情)
                 에 떨어지고,생각[意根]으로 헤아리면 끝내 찾을 수 없다”고
                 하였다.암두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는 향상인(向上人)의 살림살이이다.눈앞에 조금만 내보였
                 는데도 번갯불이 스치는 것과 같다.”

                   남전스님의 본뜻 또한 이와 똑같다.호랑이를 사로잡고 용과
                 뱀을 가려낼 줄 아는 솜씨가 있었다.여기에 이르러서는 반드시
                 스스로가 알아야 한다.듣지 못하였느냐?끝없이 초월하는 길
                 [向上一路]은 일천 성인이 전하지 못했는데,배우는 이들이 애
                 쓰는 꼴은 마치 물속에 어린 달 그림자를 잡으려는 원숭이와
                 같다는 말을.
                   설두스님의 송을 살펴보도록 하라.


               송

               듣고 보고 느끼고 아는 것이 따로따로가 아니고,
                -삼라만상이란 한 법도 없다.산산조각이 나버렸구나.안․이․비․
                 설․신․의가 모두 구멍 없는 철추로다.
               산과 물의 경관이 거울 속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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