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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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125
체와 용이 나뉘건 말건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
( 좋은 일도 없는 것만 못하다는)끝의 구절을 알고서 (부엌의
삼문이라는)앞 구절을 맛보아라!결코 끝 구절에서 살림살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고인(유마경 에 나오는 말)은 “안주함 없는 근본으로써 일
체법을 세운다”고 하였다.여기에서는 지혜의 빛을 회롱하거나
알음알이를 놀려서도 안 되고,그렇다고 또한 일이 없는 것으로
알아서도 안 된다.
옛사람(보운경 )의 말에 “차라리 수미산처럼 유견(有見)을
일으킬지언정 겨자씨만큼도 무견(無見)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고 하였다.성문이나 연각들은 흔히 이런 견해에 떨어져 있다.
설두스님의 송은 다음과 같다.
송
본래 갖추고 있는 밝음이 홀로 빛나니
-삼라만상이 서로 손님과 주인이 되어 함께 어울린다.코가 깨졌구나.
눈먼 놈아,무엇 하느냐.
그대 위해 한 가닥 (방편의)길을 열어 놓았노라.
-어찌 한 가닥 길뿐이겠는가,열 개의 해가 함께 비춘다.한 가닥 길
만 열어 줘도 되지.
꽃잎은 시들고 나무는 그늘도 없노니
-언구를 늘어놓아 언제 (생사윤회를)끝마칠 기약이 있겠는가?어느
곳에서 찾을꼬.검은 칠통 속에 먹물을 담았구나.
살펴보면 그 누가 보지 못하랴.
-눈이 멀었군.절대로 울타리에 의지하거나 담벼락을 더듬어서 길을
가서는 안 된다.두놈 세놈 눈이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