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5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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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195


                 다.”
                   그 신은 두 번 절을 한 후 사라져 버렸다.이에 시자가 물었
                 다.
                   “저희들은 오랫동안 스님을 모셨지만 아직껏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는데,부엌신은 왜 대뜸 깨달음을 얻어 바로 하늘나라에
                 태어났습니까?”

                   “ 나는 그에게 ‘너는 본래 질그릇 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신령함이 어디로부터 오겠으며 성스러움이 어디로부터 일어나
                 느냐’고 말했을 뿐이다.”
                   시자와 스님 모두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스님은 말하였다.
                   “알았느냐?”
                   “ 모르겠습니다.”
                   “ (법문을 청하려거든)절을 올려 봐라.”
                   스님 둘이 절을 하자,스님은 말하였다.

                   “깨지고 깨졌으며,떨어지고 떨어졌다.”
                   이에 시자는 홀연히 크게 깨쳤다.그 뒤 어떤 스님이 이를
                 안국사(安國師)에게 말씀드리자,국사는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물아(物我)가 하나[一如]임을 몽땅 알았구나.”
                   부엌신이 이를 깨달았던 것은 그렇다 치고,시자에게는 오온
                 (五蘊)의 몸이 그대로 있는데도 “깨치고 떨어졌다”고 말하였다.
                 부엌신과 시자가 모두 깨침을 얻었다.사대 오온(四大五蘊)과

                 질그릇․진흙이 같은 것일까,다른 것일까?
                   그렇다면 설두스님은 무엇 때문에 “주장자를 홀연히 내려치
                 니,나를 저버렸다는 걸 알겠네”라고 말하였을까?무엇 때문에
                 저버리게 되었을까?이는 아직 주장자(본래면목)를 얻지 못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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