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4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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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무 속에다 잠깐 녹여 보면 결코 한 점도 쓸 수 없다.
오조(五祖)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참선은 유리병 속에서 떡가루를 찧
듯 한다.결코 굴려 보려 해도 되지 않으며,흔들며 털어 보아
도 나오지 않고 툭 건드리면 바로 깨져 버린다.생동감 있는 경
지에 이르고자 한다면 터지지 않는 가죽 포대의 선[皮殼漏子禪]
으로 참구하라.이는 높은 산에서 굴려 내려도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
옛사람(風穴스님)은 말하였다.“설령 말하기 이전에 안다 해
도 한 껍질 막힌 것이고 집착하여 매인 것이며,언구에 정통한
다 해도 언제나 미친 견해를 면치 못하리라.”
“ 불쌍하고 가소롭다.천평 늙은이여,행각하는 꼴이 처음부터
가소롭더니”라는 말은 설두스님의 “그가 사람을 마주하여 말하
지 못함을 불쌍히 여겼고,한 뱃속의 선[一肚皮禪]을 알고서 조
금이나마 구사해 보려 했지만 되지 않았던 것이 가소롭다”고
한 것이다.
“틀렸어,틀렸어”라고 했는데,두 번 ‘틀렸어’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천평이 몰랐던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대답이 없었던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나,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두 번의 ‘틀렸어’라는 말은 전광석화처럼 번뜩이는 것임
을 참으로 몰랐다 하겠다.이는 향상인의 경지이므로,마치 칼
을 잡고 사람을 베려거든 똑바로 목줄기를 잘라야만 숨통을 끊
어 놓을 수 있는 것과 같다.만약 이 칼날 위에서 행할 수 있다
면 바로 종횡무진 자재할 수 있다.이 두 번의 ‘틀렸어’라는 말
을 안다면,“서원의 맑은 바람이 단박에 녹아 버렸다”는 뜻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