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0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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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대교(大敎)를 전하여 부처님 대신 설법하라 하였는
데,야반에 무엇 때문에 술에 취하여 거리에 누웠소!”
“ 지금껏 경을 강의했던 것은 나를 낳아준 부모의 콧구멍을
눌렀다 비틀었다 한 것과 같습니다.오늘 이후론 다시는 감히
이 같은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이 기특한 놈을 살펴보라.밝고 밝으며 신령하고 신령한 것
을 알고서 나귀 앞이나 말 뒤를 따라다니는 종노릇을 하네.모
름지기 업식(業識)을 타파하여 한 실오라기만큼도 얻은 것이 없
다 하여도 한 개는커녕 반 개 정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옛사람(지공화상)의 말에 “터럭 끝만큼도 닦아서 배우려는
마음[修學心]을 일으키지 않아도,형상 없는 빛[無相光]속에서
항상 자유로웠다”고 하니,다만 항상 적멸(寂滅)을 알 뿐 성색
(聲色)을 인식하지 말며,영지(靈知)를 알 뿐 망상은 피우지 마
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가령 철퇴가 정수리 위에서 왔다갔다한
다 해도 정혜(定慧)는 또렷이 밝아 끝내 잃지 않으리라”고 하였
다.
달마스님이 이조(二祖)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흰 눈 위에서 팔을 끊은 것은 무슨 일을 하고자 함
인가?”
“ 저는 마음이 편안치 못합니다.스님께서 마음을 편케 해주
십시오.”
“ 마음을 가져오너라.그대에게 편안함을 주리라.”
“ 마음을 찾아보아도 끝내 찾지 못하겠습니다.”
“ 그대의 마음을 편안케 해주었다.”
이 말에 이조스님은 홀연히 깨쳤다.말해 보라,이러한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