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선림고경총서 - 37 - 벽암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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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암록 下 31


                   “투철하게 생사를 벗어나는 일을 했습니다.”
                   “ 투철하게 벗어났는가?”
                   “ 거기에는 생사가 없습니다.”
                   “ 20년 동안 백장에 있었으면서도 아직도 번뇌[習氣]를 없애
                 지 못하였구나.”
                   운암스님은 하직하고 남전(南泉)스님을 찾아갔다가,그 뒤 또

                 다시 약산으로 되돌아와서야 깨침을 얻었다.
                   옛사람을 살펴보면 20여 년 동안 참구하고서도 미숙하여,살
                 에 달라붙고 뼈에 달라붙어 싹 빠져나오질 못하였다.이는 옳기
                 는 옳으나 앞으로 나아가도 마을을 만나지 못하고,뒤로 돌아가
                 자니 주막도 없는 것처럼 오도가도 못 하는 격이다.다음과 같
                 은 말을 듣지 못하였는가.

                     언구가 고정된 틀[窠臼]을 여의지 못하면

                     어찌 5개 10전(五蓋十纏)을 벗어날 수 있으랴.
                     흰구름 골짜기에 덮이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헤매었을까.

                   조동 문하에서는 이를 한 번 딱 건드려 봄[觸破]이라 한다.
                 그러므로

                     봉화루 앞에서 선장(仙仗)을 살짝 여니
                     당시의 사람들이 호령을 할까 두려워하네.


                 라고 하였다.이 때문에 “가시덤불을 뚫고 지나야 한다”고 하였
                 다.만일 이를 뚫고 지나지 못한다면 결국 가느다란 실오라기에
                 걸려서 끊어 버리지 못한다.이는 앞서 말한 “앞으로 나아가자
                 니 마을도 없고,뒤로 돌아가자니 주막도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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