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9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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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을 갖추고 있으므로 그것을 보는 것이 단번에 일어날 수 있다. 단

             번에 일어나므로 돈오이고 본래 갖춘 것을 보므로 견성이다.
                그런데 그 보는 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들어서 그러한 사실을 알

             고는 있지만 아직 직접 보지는 못한 차원(不覺), 얼핏 본 차원(相似覺), 보
             고는 있으나 분명하지 않은 차원(隨分覺), 언제나 명료하게 보는 차원(究

             竟覺)이 그것이다.
                성철스님은 이 중에서 언제나 명료하게 보는 차원만이 진정한 견성

             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대열반경』의 문장을 집중적으로 인용한
             다. 『대열반경』에서는 분명하게 성문과 연각은 불성을 보지 못하였으며,

             10단계의 지위에 있는 보살들조차 아직 분명하지 않은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성철스님은 견성과 깨달음이라는 용어에 붙어 있는 다양한 역사적
             흔적을 벗겨내고 그 원래 의미를 복원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복원은

             석가세존의 깨달음에 직접 연결될 때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다고 보았
             다. 그리하여 견성이 곧 성불이며, 깨달음은 오직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의 구경각일 뿐임을 거듭 주장한 것이다. 아라한은 물론 10지, 등각 또
             한 견성하지 못하였으므로 무상정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무상정각으로서의 돈오돈수는 오직
             상상근기의 수행자에게 가능할 뿐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중하근기의

             수행자들에게는 돈오 이후 점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근
             기론은 『대열반경』에도 보인다. “하급, 중급의 수행자는 불성을 보지 못

             해 성문·연각의 도를 얻고, 상급 수행자는 분명하게 보지 못해 10지보
                                                                       80
             살에 머물며, 상상급 수행자는 밝게 보아 무상정각을 얻는다.” 라는



                 『
              80   大般涅槃經』(T12, p.524b), “下智觀者不見佛性, 以不見故得聲聞道. 中智觀者不


                                                             제4장 무상정각 ·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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