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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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바른 도이다. 평상심이란 조작이 없고, 시
               비가 없고, 취사선택이 없으며, 단멸과 영원함이 없고, 범부와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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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없는 것이다.


               분명 마조스님은 남악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바로 이렇게 깨달았다.
            이렇게 깨달은 뒤 다시 수행한다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생멸심

            이고 조작하는 일이다. 성철스님의 수행 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
            날 수 있는 지점이다.

               사실 모든 참선 수행법은 조작하지 않는 마음을 지향한다. 돈점의
            모든 길이 그렇고 묵조선이 그렇다. 선종의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행법

            인 간화선도 물론 그렇다. 그런데 간화선은 화두참구라는 구체적 과제
            가 있어서 열심히, 그야말로 목숨을 떼어놓고 수행하는 길을 제시한다.

            머리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무르는 일이 화두선 수행도량의 흔한 풍경이
            기도 한 이유이다. 이것은 지금 당장 무심을 실천해야 궁극의 무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황금률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렇게 노력하는 일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조작하지 않는 마음을 성취

            하는 길이라는 역설이 성립되는 화두참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작 없는 무위심에 머물라는 말은 가장 쉽고 완벽한 가르침임에 틀

            림없다. 다만 그것은 깨달음 그 자체인 스승이 생생하게 현존하는 현장
            일 때 가능하다. 반면 스승이 없다면 그것은 바로 관념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이에 비해 화두참구는 알 수 없음에 대한 간절한 질문을 내
            용으로 한다. 간절한 질문은 일체의 관념과 생각에 머물 틈이 없이 오



                『
             81   景德傳燈錄』(T51, p.440a),“道不用修, 但莫污染. 何爲污染, 但有生死心, 造作趣
                向, 皆是污染. 若欲直會其道, 平常心是道. 謂平常心, 無造作, 無是非, 無取捨, 無
                斷常, 無凡無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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