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3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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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 모를 뿐인 상태로 밀고 나가도록 추동한다. 겉으로는 인위적이고
조작적인 노력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화두참구의 매 순간은 무
위심의 실천이 된다. 그래서 간화선의 문에서 열심히 노력하라는 가르
침은 조작적 유위심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게 된다. 무위심을 지향하는
선문의 가르침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무상정각론의 보살에 대한 논의를 보면 성철선이 지향하는 바가 뚜
렷해진다. 성철스님이 남긴 가르침 중에 ‘중생을 이익되게 하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보살정신을 표현한 말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선문정로』에
서는 영원히 번뇌를 타파한 제불여래만이 견성이라 강조하고 있다. 이
러한 관점에서 성철스님은 『대열반경』을 거듭 인용하면서 보살의 견성
이 미완성형임을 강조한다. 즉 9지까지의 보살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전해 듣는 방식으로 보았다(聞見)는 것이고, 보살의 최고위에 오른 10지
보살도 눈으로 직접 보기는 하지만 어두운 밤에 물건을 보는 것처럼 분
명치 못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번뇌를 끊어내지 못하였으므로 진
정한 견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보살의 하화중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와 관련
하여 일찍이 목정배 교수는 선의 실천은 “인식적 논리나 동정심으로 구
원하는 윤리적 봉사가 아니다.”라고 적절히 지적한 바 있다. 보살의 하
화중생은 사회적 실천의 방식으로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윤리적 봉
사와는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로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 길일까?
성철스님이 인용한 『대열반경』의 문장 중에 “해탈을 얻은 고로 불성
을 보며, 불성을 봄으로 대열반을 얻나니, 이는 보살의 청정지계淸淨持
戒니라.”는 구절이 있다. 해탈, 견성, 대열반을 이룬 보살이라야 청정지
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깨달음을 향한 여정을
제4장 무상정각 ·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