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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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우리는 본래 깨달아 있음(本覺)과 아직 깨닫지 못함(不覺)의 모
순 속에 놓여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수행은 큰 신심과 부지런한 공부의
통일에 다름 아니다. 먼저 본래 깨달아 있음에 대해 확고부동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닌 이치에 어둡지 않아야 한다. 다
음으로 아직 깨닫지 못하였음을 아프게 인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애쓰
는 일이 있어야 한다. 이 둘은 또한 상보적인 관계에 있기도 하다. 본래
깨달아 있음을 믿기 때문에 수행이 실속을 갖추게 되고, 수행이 심화될
수록 본래 깨달아 있음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어 가기 때문이다.
이 양자 간의 모순이 해결되어 변증적 통일이 일어나면 그것을 궁극
적 깨달음(究竟覺)이라 부른다. 반면 둘 중 하나가 부족하면 진정한 깨
달음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본래 깨달음만 가지고는 ‘미친 소견’이 되
고, 부지런한 노력만 가지고는 외도선이 된다.
그래서 성철스님은 불성이 스스로에게 갖춰져 있음을 믿고 부지런히
공부해 나가면 누구나 성취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렇게 바른
견해를 갖춘 바른 노력이 수행의 본질이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중생으
로 규정할 일도 없지만 닦음 없이 이미 깨달아 있다는 허담을 일삼을
일도 없게 된다.
그렇다면 열심히 수행하라는 이 말이 혹 무위심을 지향하는 선문의
가르침과 모순되지는 않을까? 돈오문의 입장에서 볼 때 성철스님의 노
력하라, 열심히 수행하라는 말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마조스님에게 이
런 말이 있다.
도는 수행할 필요가 없으니 다만 때만 묻지 않게 하라. 어떤 것이
때 묻는 일인가? 일단 생멸하는 마음이 있거나 방향을 조작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모두 때 묻는 일이다. 만약 곧바로 그 진리를
제4장 무상정각 · 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