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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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상근기의 밝은 견성만을 인정하고
다른 것을 배제한다는 결론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니까 미리 자신을 상
상근기가 아니라고 한정하는 것은 『대열반경』의 의도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성품을 보고 마음을 밝히는 선문의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
여기에서 학문적 고찰과 선문의 실천에 그 지향하는 바의 차이가 있
을 수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는 데 집
중하는 학문 연구의 입장에서는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궤적을 설명
하는 데 있어서 같은 돈문이라 해도 돈오점수론이 더 매력적일 수 있
다. 이에 비해 당장 이 자리에서의 깨달음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선사
의 법문에서는 돈오돈수의 윽박지름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이것은 수
행자의 내면에 남아 있는 미혹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선문정로』는 윽박지르는 법문이다. 그만하면 됐다는 말을 기대할 수
없는 비타협의 극치이다. 이것이 성철스님이 제시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선문정로』의 가르침을 지침으로 삼고자 한다면 돈오돈수의 윽박지름
앞에 솔직한 무방비 상태로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무상정각론의 의의는 무엇인가? 수행이 익어가고 전에 없던 경계를
체험할 때, 수행자는 정직한 자아 성찰을 행해야 한다. “나는 지금 불
성을 보고 있는가? 보고 있다면 그것이 한결같은가?” 이에 대해 견성이
곧 무상정각이라는 입장이라면 ‘그렇다!’, 혹은 ‘아니다!’의 두 가지 대답
만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면 거의 대부분의
수행자는 ‘나는 아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될 것이다.
見佛性, 以不見故得緣覺道. 上智觀者見不了了, 不了了故住十住地. 上上智觀者見
了了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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