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1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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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 완전한 견성의 자리에 이르는 돈오원각론을 제창하는 입장에 있
었으므로 이 구절을 생략한 것이다.
②의 뒷부분, 즉 성문은 ‘비록 깨달았지만 깨달은 뒤 다시 미혹하게
된다(雖卽已悟, 悟已却迷)’는 구절의 생략을 보자. 마조스님이 지적하는 성
문의 한계는 조작적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고자 하는 데 있다.
이렇게 없는 것을 성취하는 깨달음이라면 그것은 나중에 다시 사라질
수도 있다. 이에 비해 성철스님은 여래의 원각이라야 진정한 깨달음이
라는 돈오원각론을 주장하는 입장에 있다. 한 번 깨달으면 영원히 깨닫
는 것이므로 다시 미혹해지는 일이 없으며, 미혹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깨달음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미혹해질 수도 있는
성문의 경계를 깨달음(悟)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곤란하다. 이
구절을 생략한 이유에 해당한다.
③에서는 ‘지옥의 고통과 같은 것으로 본다(觀如地獄苦)’는 구절을 생
략하였다. 이 구절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보살이 성문의 길
을 비판적으로 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살들은 이 성문을 지
옥의 고통과 같이 여기는데, 성문이 공에 빠지고 고요함에 걸려 불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 이다. 둘째, 보살이 공적에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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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러 보살들은 지옥의 고통을 보
면서, 이를 벗어나고자 공적을 추구하다가 공에 빠지고 고요함에 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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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된다(沈空滯寂)고 해석하는 것 이다. 성철스님의 번역은 두 번째 경
우에 해당한다. 문장의 구조, 문맥, 교리 등의 각 측면에 있어서 공히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공에 빠지고 고요함에 걸리는 일
124 김태완, 『마조어록』, 서울 : 침묵의 향기, 2000. p.68.
125 백련선서간행회, 『마조록·백장록』, 서울 : 장경각, 1989. p.26.
제5장 무생법인 ·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