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0 - 정독 선문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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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담고 있다. 심층적으로 마조스님에게 동의한다 해도 독자들이
이 인용문을 보고 수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이해에 도달하지
않도록 차단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선문정로』의 설법 의도는 지해적 차원의 눈뜸을 깨달음으로 자처하
며 수행의 고삐를 늦추는 수행자들의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는 데 있
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아예 생략하여 처음부터 오해의 소지를 차단
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마조스님도 이 점을 우려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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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지 않으면 범부와 같다.” 고 경고하였다. 해당 구절의 생략에는 이
러한 고려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②의 ‘이렇게 8만 겁, 2만 겁을 머물며, 비록 깨달았지만 깨달은 뒤
다시 미혹하게 된다(八萬劫二萬劫, 雖卽已悟, 悟已却迷)’가 생략되었다. ‘8만
겁, 2만 겁’은 성문이 공의 선정을 통해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
한의 깨달음을 증득한 뒤, 다시 대승의 견성에 이르기까지 경과해야 하
는 시간이다. 즉 최초의 불과인 수다원에서 대승적 견성에 들어가려면
8만 겁이 필요하고, 사다함에서는 6만 겁, 아나함에서는 4만 겁, 아라
한에서는 2만 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의 선정에 머
무는 일의 비효율성을 강조하는 말로서, 앞의 머문다(住)는 글자에 그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구체적인 시간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나아가 생략된 구절은 교학적 설명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다. 최
소한 왜 8만 겁이고, 왜 2만 겁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 번
다함으로 인해 인용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 이를 생략한 이유에 해
당한다. 더구나 해당 구절은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점차
적 지위의 승급을 전제로 한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지위를 뛰어넘어 단
『
123 馬祖道一禪師廣錄』(X69, p.2c), “若言不脩, 卽同凡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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